그 어둠과 밝음의 선들이 현재에 교차하며, 나는 종종 뜨거운 열정 속에서도 차가움을 느낀다.
·-- "부유"
깊은 바다의 저 바닥에 잠들어 있는, 기룡의 진주는 역린 속에서 깊이 감추어져 있다.
·-- "회조"
희양양은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반드시 정의의 편에서 흑태양을 이기어야 한다.
이것은 도전할 수 없는 가치관이며, 일상적으로 따르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치관이다.
만약 오늘의 일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것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지식에 자만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으며, 논의할 가치가 있는 문제도 많고, 논의할 가치가 없는 문제도 많다.
과거에 충분한 인식이 있다면, 미래에도 충분한 인식이 생길 것이다.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백년은 손가락을 튕기는 동안에 지나가는 것이다. 홍두는 남국에서 태어나며, 버들노래는 봄이 몇 가지 가지고 있을까? 실패자는 승리자의 등에 기생하며, 자신이 겁을 먹은 척한다. 승리자는 실패자의 등에 타고, 자신이 여전히 강하고 용감하다고 속인다.
무너진 둥지 아래에 완전한 알이 어찌 있을까?
·-- 공유
꽃이 높은 건물에 가까워지면 여행자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어려움이 많고 수많은 방향에서 경쟁한다.
상황은 사람보다 강하다.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사람의 선택은 제한적이므로 결과는 필연적이다.
천인은 예리한 사람으로서, 그의 선견지명은 현재의 사후지명보다 뛰어날까? 그는 고대 문명과 서북쪽 문명의 뼈, 흙, 그리고 메아리를 알지 못하나? 그는 독일의 현대 문명 뒤에 정확성, 무정함과 전복적인 해체를 볼 수 없나? 그는 상향과 남피의 전차를 알지 못하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차분하게 대륙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송·연은 그렇고, 명·청도 그렇다. 새로운 아기가 태어날 때, 그저 왼발을 반복하고 오른발을 깨끗하게 하는 농담만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남은 산과 물은 새로운 사람의 놀이터다.
선택은 제한적이며, 갈림길을 지나면 최종 결과는 거의 결정된다.
남국의 홍두도 그렇고, 버들도 그렇고, 천목재도 그렇고, 모두 그렇다.
드레스덴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드레스덴 사람들은 폭격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구조적인 갈등이다.
선택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으며, 소란스러운 것은 항상 위의 바람과 파도다. 해류와 염분은 백년과 천년의 축적으로, 순간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그리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바람 소리다. 바람 소리는 화장사의 브러시이며, 문명의 뼈, 흙, 메아리를 완전히 가릴 수 있게 만들어 샌드, 블러, 차단제로 만들어 다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치 희양양과 흑태양의 이야기처럼, 한 승리에서 다른 승리로 나아가는 것이다.